사람들

우영미라는 브랜드의 가치

sadred 2022. 10. 7.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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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영미

경제신문에서 기자 일을 수년째 하는 중에 마음에 드는 것 몇가지가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유명인사를 만나는 것입니다. 

기자라는 직업을 갖지 않았다러면 평생 마주칠 일도 없는 사람과 앉아 1시간 정도 그의 인생 스토리를 듣습니다. 특정 분야에서 수십년째 종사하는 이들의 성공이나 실패스토리를 들으면 나태해졌던 마음에 정신이 번쩍듭니다. 

 

하지만 신문이라는 특성상 이들과 했던 모든 얘기를 지면에 담을 수는 없습니다. 그들이 한 중요한 이야기들 중에 신문에 적합할 내용을 입맛에 맞춰 쓰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럴 때는 참으로 아쉽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신문기사에 싣지 못했던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작년 이맘때쯤 꽤나 인상적인 사람을 만났습니다. 패션 디자이너 우영미라는 사람입니다. 우영미는 남성복 디자이너로 20년이 넘는 기간 패션업계에서 종사한 인물입니다. 

 

그의 패션 브랜드 '우영미'는 최근에 젊은이들 사이에서 '신명품'으로 인식이 되면서 인기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브랜드 우영미의 반팔티는 한 장에 50만원이 넘을 정도로 정도로 고가인데도 매번 품절입니다.

 

우영미 대표를 만나러 신사동 도산공원에 갔습니다. 일찌감치 도착해 인터뷰 자료를 정리하던 중 그가 도착했습니다. '디자이너는 무섭고 사나울 것'이라는 고정관념과는 달리 굉장히 차분해보이고 지적여 보였습니다. 검은색 외투와 단정한 단발머리, 그리고 간결한 말솜씨가 그의 심플한 옷 디자인과도 닮았습니다.

 

그와 대화한 40분 남짓의 시간은 커피향처럼 은은하고 향기로웠습니다. 저는 잠깐이나마 그녀가 걸어온 삶과 가치관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그녀의 삶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브랜드'입니다. 이 세상에는 수많은 마케터들이 많습니다만, 아마 브랜드의 뜻을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은 드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품을 그럴듯하게 보이게 포장해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것이 마케팅이고 브랜딩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브랜드는 역사입니다. 우영미의 인생 자체가 브랜드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패션 브랜드 '우영미'를 지키기 위해 20년을 한자리에서 버텼습니다. 자신의 브랜드를 남들에게 팔고 떠날 수도 있었는데 말이죠. '존버'했다고 하죠.

 

그녀는 이렇게 회고했습니다. "대기업 임원들을 만나면 '왜 그렇게 장사를 하냐', '홈쇼핑에 적당한 가격에 옷을 팔면 부자가 될 것 아니냐'고요". 

 

그리고 그는 나지막하게 말을 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팔아요 내 아이같은 브랜드인데요".  패션 브랜드를 팔라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지만, 자신의 브랜드를 지켰습니다. 그렇게 20년간 브랜드의 정체성을 지켰기 때문에 지금 젊은 층들이 우영미라는 옷에 열광하는 것이겠죠. 

 

그가 이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브랜드를 팔았더라면 그래도 우영미라는 이름이 지금과 같은 가치를 지니고 있을까요? 저는 우영미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도산공원 근처의 맨메이드. 우영미 대표가 운영하는 카페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부분이 또 있습니다. 그가 운영하는 패션기업 쏠리드의 매출액은 500억원 정도입니다. 패션 브랜드 우영미 등 모든 패션 브랜드의 매출을 합한 수치입니다. 아주 작은 기업입니다. 하지만 지금 누군가 우영미라는 브랜드를 살려면 과연 얼마의 돈이 필요할까요? 그 가치는 매출에 비례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한국은 시장이 굉장히 작습니다. 아주 인기가 많은 패션 브랜드도 500억원을 넘기가 힘들다고 합니다. 여기서 기업은 브랜드 매출을 높이기 위해서는 두 가지 방법 중 하나를 선택한다고 합니다. 첫째, 브랜드 가치를 버리고 할인을 해 매출을 늘리는 방법입니다. 두번재는 해외로 진출해 매출을 늘리는 전략입니다. 

 

보통 기업은 첫 번째 전략을 사용합니다. 그것이 가장 쉬운 방법이기 때문이겠죠. 할인을 해 상품을 내놓습니다. 다른 한쪽으로는 라이선스를 넘겨 수익을 얻는 방법도 있습니다. 이런 쉬운 길을 뒤로한 채 우영미는 해외로 진출하는 쪽으로 방향을 돌렸습니다. 그의 패션 브랜드 우영미는 파리에서 인정받고 있습니다. 전례가 없는 일이죠.

 

브랜드의 가치는 참 중요합니다. 요새 아이들은 삼성의 갤럭시와 애플의 아이폰 중 어떤 상품을 사고 싶냐고 물어보면 대다수 아이폰이라고 한다고 합니다. 사실상 두 핸드폰의 기술력에는 차이가 없습니다. 그러나 플래그십 모델의 경우 애플이 40만원 더 비쌉니다. 그래도 소비자들은 애플의 아이폰을 삽니다. 애플은 삼성보다 상품을 40만원 더 주고 팔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이게 바로 브랜드의 가치입니다. 매출을 늘리기 위해 핸드폰을 저가로 팔아치웠던 것들이 결국 브랜드 이미지에 반영돼 돌아옵니다. 브랜드는 공짜가 아닙니다.